나는 작가 고 이청준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분이 남긴 말중에서 인상깊은 구절이 있어서 옮겨본다.
누구나 다 비슷한 삶을 사는데 그것이 소설화 되고 못 되고는 어떻게 이야기하느냐, 어떻게 다른 시각으로 보느냐 하는 겁니다. 결국은 상상력, 이야기 방식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글쟁이의 삶이라는 게 상상력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최소한의 도덕적인 삶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역발상이라는 게 거짓말이 돼요. 최소한 그 거짓말이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 만한 삶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문학이라는 장르 넘어 예술로 통칭되는 모든 아름다움에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아름다움의 진정성은 삶의 삶에서 시작되고 작품에서 완성된다고 본다. 제 아무리 바그너의 음악이 위대하다고 해도 아우슈비츠에서 울리는 바그너의 음악은 비극일 뿐이다.
덧붙임.
이웃 블로거이신 Lachrimae님의 덧글을 보고 몇자 추가하고 싶어 몇 자 적는다. 나도 예술과 삶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사실 역사를 통틀어 별개의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바그너의 삶과는 별개로 치더라고 바그너의 음악이 이스라엘에서 연주되지 않는 까닭은 간단한다. 예술은 그 자체로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그 예술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에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과 분리된 예술을 수없이 목도해왔지만, 진정한 예술은 삶과 일치하는 곳에서 절정을 이룬다 확신할 수 있는 까닭은 바흐라는 높은 봉우리가 아직은 건재하기 때문이다. 바흐는 음악으로 하느님에게 다가가고자 했고, 바흐의 음악은 그의 간절한 염원이 담겼다. 그의 간절함이 시대를 초월해 음악을 통해 내게 전달되기 때문에 바흐를 내가 이렇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예술과 삶의 일치성을 주장하고 강조하자는 것이 아니다. 예술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때문에, 사람이라는 그 주관성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분명 예술과 삶은 별개지만, 우리가 과연 진정성을 떼어놓고 그 무엇이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이 수 있겠는가.
고 이청준 작가의 저 말이 내게 유달리 선명하게 다가온 것도 작가가 말한 최소한의 도덕성. 이것 없이는 예술이라는 것 자체의 존재가 무의미해지기 떄문이다. 아무리 예술과 삶이 별개로 치부될지라도 최소한의 도덕성은 그 경계의 마지노선이다. 이 선을 넘어설 때 예술은 이미 예술로서의 그 가치와 의미를 잃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바로 전 글과 연결되는 글인 것 같네요;;
물론 예술의 아름다움은 진정성 있는 삶의 바탕에서 이루어졌을 때 더욱 빛이 나는 것입니다만,
바그너의 예처럼 진정성이 결여된 삶에서도 위대한 예술이 탄생하기도 하죠.
한 인간의 삶과 그 사람의 예술이 관련이 없을 수는 없지만, 저는 예술과 인간의 삶은 별개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의 도덕적인 삶. 좋습니다. 크게 생각치않으니 우리모두 그정도는 하기위해 노력해야합니다. 예술인도 최소한 그래야합니다.
얼마전 한국화의 거장을 뵜는데, 그분의 깊은 지혜와 철학 소탈한 모습에 더욱 경외감을 느끼고 왔습니다. 그러고나니 그분의 그림이 더더욱 좋더군요. 예술과 삶이 별개인 이들도 있고 합치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것을 알고 본다면 우리네가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은 또다를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사람이니까요. 아아 우리모두는 사람이어라.
별개로 파악하는 것은 맞지만, 최소한의 전제조건을 충족해야겠죠. ^^ 히틀러가 아무리 위대한 그림을 그린다 해도 그건 예술이 아닌 것 처럼.
그렇죠.
사람이기 떄문에 각각의 모양이 다 다른데, 똑같은 것을 강요한다면 예술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다만 삶과 예술이 일치된다면 그것처럼 아름다운 것도 없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