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술아비의 축문(祝文) / 박목월
아배요 아배요
내 눈이 티눈인 걸
아배도 알지러요.
등잔불도 없는 제삿상에
축문이 당한기요.
눌러 눌러
소금에 밥이나마 많이 묵고 가이소.
윤사월 보리고개
아배도 알지러요
간고등어 한손이믄
아배 소원 풀어드리련만
저승길 배고플라요
소금에 밥이나마 많이 묵고 묵고 가이소.
여보게 만술(萬述) 아비
니 정성이 엄첩다.
이승 저승 다 다녀도
인정보디 귀한 것 있을락꼬.
망령(亡靈)도 감응(感應)하여, 되돌아가는 저승길에
니 정성 느껴느껴 세상에는 굵은 밤이슬이 온다.
유명한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인 박목월님의 시다.
불교적 세계관이 투영된 시를 쓴다고 배웠는데, 우리나라의 불교라는 것이 이 땅의 민간신앙까지 포용하며 성장한 까닭에 그의 시에서는 불교적 세계관 말고도 우리의 깊은 정서같은 것이 느껴진다.
난 생긴 것 하고는 달리 시를 무척 좋아한다. 서구 낭만주의 시인들의 걸작도 대단하지만, 내 생각과 표현이 어떤 말로 울리는 지를 생각하면, 시라는 이 고도의 압축문은 산문과 달리 모국어를 젖줄로 한다. 워즈워드의 틴턴애비를 읽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지만 내 살과 뼈가 감응하는 시는 어쩔 수 없이 운명처럼 정해졌다.
글자로 쓰여졌지만 말로 옮길 수 없고, 오직 마음으로 느껴지는 이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