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와 신자유주의, 둘 사이의 공통점

마트와 신자유주의 공통점이라면, 선택과 집중이라고 볼 수 있다. 영세 상인 수백명, 아니 수천명의 몫은 능히 마트가 혼자 해내리라 본다. 풀어서 설명하면 마트 하나가 수천명에게 고루 돌아갈 지역사회의 구매력을 독점한다는 것이다. 마트가 하나 들어서면 제일 먼저 시장부터 타격을 받고, 그 다음이 동네 영세상점이다. 이를 신자유주의에 대입해, 신자유주의의 멋들어진 포장을 들춰내면 결론은 단순하다. 가진 사람은 더 많이, 없는 사람은 더 빈곤하게.

자유무역을 통한 개인과 사회의 발전과 그 가능성? 웃기는 소리다. 역사를 통해서 정부 실패보다 시장 실패가 얼마나 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보지 못하였던가. 가진 사람은 시장이 실패하던 정부가 실패하던 그들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될 뿐이지. 하지만 없는 사람은 다르다. 실패에 대한 대가를 온몸으로 치러야 하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노무현도 신자유주의라는 파도를 감당하지 못했고, 어찌되었든 그 조류에 충실했던 정치인이었다. 외형상 국가 경제는 부유해졌을지 몰라도, 서민들의 삶이라는 것은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불안정한 일상으로 점철되었다.

그런데 내가 웃기다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를 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서스럼없이 대형마트에 들날거린다는 것이다. 이명박의 부자만세 정책에 흥분하면서도 자기가 대형 마트에 가는 것에 대한 아무런 비판의식이 없다. 대형 마트 하나로 죽어가는 수많은 영세 상인의 삶이 곧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신자유주의의 파도라는 것이 결국은 무지한 대중의 가담으로 그 덩치를 키워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것 둘째치고 이명박이 대통령되면 잘살게 될거라는 이 망국의 무지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않은가.

마트와 신자유주의는 기득권 계층의 노골적인 협작에 불과하지만, 그 포장은 경쟁을 촉진하고 선택의 자유와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가면을 쓰고 있다. 대중은 천진하게도 이 가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속의 늑대의 웃음은 모르는 것인지 외면하는 것인지 아무튼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독배를 스스로 마시는 것이라 할까? 마트에 가고 신자유주의를 열심히 부르짖어봤자 더욱 고달퍼지는 것은 서민의 삶이다. 수천명이 먹고살 재화가 한명에게 집중되면 그 수천명이 소비하며 지역사회에서 유통되어야 할 재화가 줄어든다. 지역사회의 피폐는 불을 보듯 뻔한 것 같은데 왜 마트는 오늘도 북적이는지 모르겠다. 신자유주의의 아버지 밀턴 프리드먼은 강의 시간의 흑인들이 못살고 더러운 이유는 그들이 무식하고 수준이 낮아서라고 대놓고 말하던 작자다. 기본적으로 그가 주장한 신자유주의는 못사는 사람이 못사는 것은 당연하니, 귀한 재화를 그런 계층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부유하고 교육받은 계층에게 재화를 맡기면 그들이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더욱 불리고 불려 이 사회를 풍요롭게 해줄거란 착각을 전 세계에 퍼뜨렸다.

독점은 마트와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둘 다 시장경제를 강조하지만 이 세상을 시장경제에 맡기면 세상은 지옥이 된다. 그런데 이 지옥의 문을 열고 있는 장본인이 바로 서민이라는 것이 참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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