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옴 – 키스 자렛 ‘Radiance’

1.
가끔 음악을 듣다 보면 가슴속 깊은 곳의 사연을 끄집어 낸다.
내 마음은 심장을 도려낸 것처럼 공허하며 죄어오는 갑갑함은 나를 극한 외로움으로 끌고 간다.
고독은 너무 고상해 내가 느끼기에 저만치 멀리 떨어져간다.

키스 자렛은 그의 외로운 여행에 나를 끌어내렸다.
그가 먼저 가고 나는 지난 추억에 이끌려간다.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몰래 감추어둔 사진을 하나하나 꺼내본다.

자렛은 울고 있다. 건반은 강철 현을 두드리고 강철현의 노래는 울음이 되어 공명한다.
가까스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고 귀를 귀울인다.
눈물이 흐르면 눈물과 함께 음악도 흘러내려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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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나를 떠났을까…
나는 스물 한 살에 성장을 멈춰버린 스물 여덟이다.
음악이 나를 죄어오면 나는 너에게 나의 심장을 나누어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빠진다.

아주 가끔이지만 가끔은 네가 보고싶다.
물론 아주 가끔 말이다.

사진속의 너는 나를 바라보지만 너와 나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인연이라는 것은 하도 질겨서 세월이라는 날 선 칼도 무디어져 버린다.
마음의 미련은 잘라내어도 비 온 뒤 솟아나는 죽순과 같이 마음을 어느새 덮어버린다.

나는 미소를 짓는다.
사진 속의 너는 항상 웃고 있으니까…

귀로 듣는데 마음이 왜 이리 저며오는 것일까…
자렛은 손으로 연주하는데 왜 마음에 눈물을 강요하는 것일까…

자렛은 손끝에 눈물을 묻혀 연주하고 있다. 자렛도 울고 피아노도 울고 있다.
덩치 큰 검은 피아노는 마녀와 같다. 자기의 슬픔에 나를 동행시키는 마녀…
적어도 이 순간 자렛과 피아노 그리고 나는 하나다.
서로 슬픔으로 얽히고 얽혀있지만 그래도 이순간 우리는 하나다.

내가 너를 사랑한 것은 깊은 수렁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음악을 만나 그 수렁에 빠질 때면 나는 너를 만나게 된다.
내 마음의 쓸쓸한 스물 한 살의 기억은 다시 되살아 난다.

깊은 밤…
건반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한 허공을 바라본다.

마음이 답답해서 눈물을 닦는다.
너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답답해서이다.

아침이 밝아온다.
이 밤을 키스 자렛과 함께 보내고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지독하게도 사랑했던 너.
나는 아직도 나의 두근거리고 아파하던 나의 마음을 찾아오지 못하였구나…
사랑은 지독해서 떠날 때 아물지 않는 상처를 심장 깊숙이 새겨놓고 떠난다.
그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도 건드리지 못하였던 나의 강철과 같은 심장은 사랑만이 이름을 새겨놓는다.

나의 심장은 강철이다.
그래서 강철의 현을 울리는 피아노를 사랑한다.
피아노와 나는 모두 차가운 심장을 지녔다.
이 차가운 심장을 울려주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오늘 키스 자렛은 그의 차가운 신보로 나를 찾아왔다.

북극의 깊은 밤,
입김 사이로 허파 깊숙히 느껴지는 한기…
혈관을 타고 한기가 내 온몸으로 흐른다.
흐르고 흐르다 내 눈에서 얼음을 뱉어낸다.

2.
파도에 부서지는 모래 위 사랑이지만,
나는 내 마음에도 널 향한 사랑을 새겨두었다.
나의 삶이 행복한 것은 널 사랑하였고 그로 인해 하느님의 사랑을 알았다는 것이지.
주님은 나의 삶 모든 것의 희망임을 알았고,
그 뜨거운 사랑이 내 불멸의 삶인 것도 알았다.

한때의 지나쳐간 사랑이었지만,
주님은 그 큰 은총으로 나의 삶을 변화시켜주셨고,
밤을 꼬박 지새운 지금 나는 사랑을 말할 수 있다.

세상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그를 사랑하기 이전부터 나를 사랑하고
나를 지목하여 불러내어주신 그분…

맨발로 달려나와 상처 많은 집나간 아들을 부둥켜안고 기쁨에 흥겨워하는 사랑을 나는 안다.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생명이다.

3.
8년만의 솔로 신보라는 Radiance…
키스 자렛은 녹슬지 않았다.
그의 영혼은 아직도 눈물을 머금고 있다.
그가 창출해내는 무한한 선율 앞에서 나는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음악에 빠져 울고 웃을 수 있었다.
귀로만 전달되는 음악은 때로 오감을 마비시키고 음악 그 자체만 몸과 마음속에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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