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 (Ravel), 블로그에 맨 처음 썼던 글을 꺼내와 보았다.


요즘 음악을 거의 안듣기는 하지만, 가끔 듣는 유일한 음악이 라벨의 관현악 작품들이다. 아바도 & 런던 심포니 연주의 트리오 시리즈를 듣는다. 가격도 저렴하고 아바도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찾기 쉽기 때문에 부담없이 손이 가는 것 같다.

라벨은 불행이나 슬픔 절망과는 거리가 먼 작곡가이다. 삶 자체도 평탄했고, 어려서부터 크게 천재로 각광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름 실력있는 학생으로 작곡가로 꾸준히 성장하여 후일 대성하였다. 교통사고만 아니였어도 만년까지 유쾌한 삶을 지속하였을텐데, 만년의 교통사고는 작곡가의 팔,다리를 잘라놓은 셈이다.

라벨의 전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라벨은 독신이지만 어린이를 사랑하고 그 삶까지 참 유쾌한 사람이다. 오죽하면 스스로가 슬픔과 절망은 작곡의 적이라고까지 말했으니까? 고난속에서 만개한 베토벤과 슈베르트같은 독일 정신에 입각한 작곡가들과는 궤가 많이 다르다. 그리고 라벨의 음악은 그가 좋아한 시계처럼 조밀조밀하고 꽉꽉 짜여진 음악이다. 라벨이 다작을 하지 않은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그의 완벽주의적 기질, 시계를 좋아한 그의 성격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라벨의 사진을 보면 멋쟁이 옷차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그의 회중시계이다.

독신이지만 깔끔했고, 독신이라고 다 동성애자는 아닌 법, 어린아이를 무척이나 사랑해서 어린이를 위한 음악도 꽤나 많들어 내놓았다. 게으른 작곡가 라벨이 얼마나 아이를 좋아했는지 알 수 있는 면모이다.

동시대 최고의 작곡가로 추앙받는 드뷔시에게 은근한 질투심도 갖고 있었지만, 라벨은 리히테르가 좋아할만한 성격이 소유자같다. 유쾌하고 따뜻하고 물론 까다로움은 모든 작곡가들의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으니 빼고, 키는 작지만 잘 차려입은 멋쟁이에 홀딱 뒤로 넘긴 머리는 조금은 근사하기까지 하다.

라벨은 작곡도 별로 안했다. 그나마 편곡작품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라벨의 거의 모든 작품들은 오늘 날에도 즐겨 연주된다. 편곡작품까지도 인기는 상종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도 라벨 편곡반이 가장 인기있으니까…

라벨은 음악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재미있고 유쾌한 작곡가이다. 말러에서 느껴지는 비극으로 치닿는 비애감같은 것은 그의 음악에서 찾을 수 없다. 비극이 수많은 영감의 원천으로 등장할 때 라벨은 단호하게 희극을 꺼내들었다.

라벨의 음악은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고, 시계속 톱니바뀌처럼 째깍째깍 이를 맞물리며 돌아간다. 그의 음악은 빈틈이 없다. 이것이 라벨의 음악성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시계하면 라벨이 생각난다.



2006/12/23 05:03 씀






라벨 (Ravel), 블로그에 맨 처음 썼던 글을 꺼내와 보았다.”에 대한 5개의 생각

  1. 라벨이 초기부터 평탄한 길을 걸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요 ^^
    끊임없이 콩쿨에 도전했지만 입상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나이 30이 되어 나이제한에 걸려서 좌절하던 중에.. 스승인 포레가 참다못해 심사의원단을 발칵 뒤집는 사건이 있었다고 하네요 ^^

  2. 핑백: Body & Soul ~
  3. 헤헤…
    로마 대전에 결국에 입상은 했지만, 번번히 떨어지고는 했지요.
    근데 라벨은 콩쿨에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았기때문에 평탄했다고 생각했지요. ^^

    나이 제한은 근데 로마 대전 사건이 아닌가요?

  4. 저도 라벨이 평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
    나이제한은 ‘로마 대상’ 맞습니다..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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