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의 출처 : [음악의 연인들] 소모임의 나우누리 시절 게시판 2998번 글
– 이 글의 원제 : 내가 좋아하는 레코드 표지그림…(1)
– 글을 쓰신 분 : 이준형 회원님 (네이버 닉네임/ID : 니페/obrecht)
– 글을 쓰신 때 : 1998년 4월 15일
내가 좋아하는 레코드 표지의 그림들… (1)
개인적으로 볼때 LP에서 CD로 음반감상의 매체가 바뀌면서 가장 아쉬운 것 중의 하나가 사실 음반 재킷이 너무 작아졌다는 것이다.특히 앨범 자켓이 아름다운 명화일 경우에는 그 아쉬움이 더 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름다운 CD커버를 좋아한다. 그리고 우연히 들어간 미술관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CD의 그림을 발견하는 것은 여간한 행복이 아니다. 다음은 그냥 내가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 보는, 나를 즐겁게 해주었던 CD커버들이다. 번호는 아무 의미도 없다.
1. Gerard David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 [동방박사들의 경배]
Josquin des Pres / Missa Pange lingua, Missa La sol fa re mi
Christmas Carols and Motets (Victoria, Josquin, Praetorius, etc)
The Tallis Scholars, Peter Phillips (Gimell)
상당히 작은 크기여서(가로세로 대략 60cm가량?) 주위의 대작에 가릴수도 있으련만 이 그림은 실로 매력적인 자태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하물며 Tallis Scholars의 이 음반들을 좋아하는 사람한테에랴….
이 두판의 그림은 대략 1515-23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생각되고 있고 그 시기와 크기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같은 성당의 같은 제단화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비교적 소품이지만 효과적인 구도와 자연스러운 원근법의 사용, 사실적인 묘사등은 이미 북유럽까지 도달한 르네상스의 거대한 기운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데, 예수의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인물들이나 비교적 밝은 색채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밝고 화려하기보다는 어딘가 어둡고 차분한 느낌을 주는 것이 과연 이탈리아의 회화와는 다른, 북부유럽만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걸작이다. 또한 주제는 아직도 종교적인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전까지 상징적으로, 혹은 간략하게 표현되던 뒷배경이 대단히 세밀하게 표현되는 등,’인간‘으로 관심이 돌려지는 시대의 흐름이 느껴진다.
한편, 클래식 음악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국의 위상을 반영하듯, 이곳 National Gallery에서는 이외에도 많은 레코드의 표지그림을 구경할 수 있는데, 언뜻 떠오르는 그림들만 해도 Trevor Pinnock가 지휘했던 핸델의 [세실리아의 날을 위한 찬가 Archiv]나 Otto Klemperer가 지휘했던 바흐의 마태수난곡(EMI),또 Andrew Parrott이 지휘한 바흐의 b단조 미사(Virgin)등의 표지그림은 모두 이 미술관에 걸려있는 그림들이며, 그 밖에도 수없이 많은 ‘표지그림‘을 구경할 수 있다.
2. Enguerrand Quarton(?) [Villeneuve-les-Avignon의 피에타]
F. Couperin ‘le Grand’/ Trois Lecons de Tenebres 외
James Bowman, Michael Chance 외 (Hyperion)
또다른 [피에타]인데, 앞의 그림보다 조금 더 유명하고, 조금 더 오래된 그림이다. 최근의 연구조사결과 작가는 Quarton으로 거의 굳어지고 있는듯 하지만 아직도 논쟁의 여지가 있고 심지어 어떤이는 이 그림이 van der Weyden의 그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작자가 누구이던간에 이 그림은 참으로 뛰어난 걸작이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하면 사람들은 – 나를 포함해서 – 반사적으로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떠올리겠지만 사실 이 작품은 루브르 소장품 중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 그림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른바 ‘피에타‘는 성서에는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은 부분인데, 숨진 ‘신의 아들‘을 그 어머니와 제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광경은 수많은 대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하여 수많은 걸작들이 탄생되어져 왔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과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조각상 [피에타], 그리고 음악에서는 Pergolesi나 Scarlatti, Rossini등의 [Stabat Mater]가 가장 대표적인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프랑스 미술에서 고딕 양식을 최후로 마무리하는 마지막 절정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뒷배경을 차지하고 있는 황금색 하늘은 곧 푸른 하늘로 대체되고 마치 수없이 많이 제작되었던 같은 주제의 목공예품을 보는 것 같은 위엄있고 기품있는 구도는 곧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수백년간 유럽을 지배했던 고딕 양식의 마지막 꽃과도 같다. 특히 예수의 머리에서 가시관을 빼내고 있는 사도 요한의 얼굴은 특히 인상적이며, 곧 다가올 새로운 시대를 예감하고 있는듯 보이기도 한다. 프랑스 음악에 프랑스 미술, 아주 잘 맞는 음반이다.
물론 루브르에도 수많은 레코드 표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역시 프랑스의 레이블인 HMF에 많이 보이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인 그림은 쇼팽과 상드의 절친한 친구였던 들라크로와(Eugene Delacroix)가 그린 쇼팽의 초상화이다. 약간 아래에서 올려다본듯한 비스듬한 옆 얼굴에 다소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그림은 수없이 많은 쇼팽 레코드와 책에 쓰인 그림이기 때문에 출전은 무의미할 것 같다.
3. 베네치아 성 마르코 성당의 모자이크
C. Monteverdi / Vespro della Beata Vergine (1610) & Magnificat
John Eliot Gardiner (Archiv)
이 레코드의 표지는 회화가 아니라 모자이크인데, 몬테베르디가 실제로 악장으로 재직했고, 이 작품이 초연되었다고 하는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성당의 천장화 부분이며, 이는 당연한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성당은 서유럽에서는 아주 드물게 존재하는 비잔틴 – 동방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이다. 9세기에 복음사가인 마르코(마가)의 시신을 안치하기 위해 지은 성당으로 그후 여러차례 보수를 거듭한 건물인데, 사실 모자이크의 상당부분은 몬테베르디 생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18, 19세기에 완성되었지만 그 아름다운 골격과 제단화등은 성 마르코의 시신이 도착했던 9세기 이후 천년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비록 이스탄불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만큼 장엄하고 아름다운 동방양식은 아니지만 (이 건물은 사실 동방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절충형이다) 성당 안쪽에 들어가서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금빛으로 장식된 둥근 돔과 그곳에 장식되어 있는 모자이크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과연 거기에서 동방무역을 장악하며 수백년간 동서양의 접합점 구실을 했던 위대했던 ‘베니스의 상인‘들이 생각나고, 언젠가 소설로 나왔던 ‘베니스의 개성 상인‘도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이 성당이 드물게 동방양식으로 지어진 이유는 바로 그들의 활발한 국제 무역일 터이므로.
베니스는 이제는 비록 동서양의 한가운데 위치하며 문화를 꽃피웠던 과거의 영광을 잃고 한낮 도시 자체가 ‘거대하고 아름다운,유럽의 박물관‘으로 전락한 느낌은 있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다. 어떤이는 ‘셰익스피어가 모든 문학가 가운데 우월하다면 베네치아는 모든 도시 가운데 우월하다‘라고도 읊지 않았던가. 마치 시간이 멈추어 버린듯한 이 전설적인 도시에는 서양의 모든 자본의 태반이 이곳으로 몰려들었을때의 기념비적인 유적을 아직도 생생히 간직하고 있다.
성 마르코 성당과 몬테베르디의 여러 곡들 역시 그 대표적인 존재라 할 수 있으며, 또 전성기에 베네치아는 수많은 위대한 화가와 음악가들을 불러모았다. 지금도 시내 곳곳에 수백년동안 조금도 변치 않고 있는 조그만 성당에 들어가보면 겉모습은 비록 약간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에는 티치아노나 틴토레토 등의 명화가 걸려 있어서 보는 이들을 놀라게하고, 또 Vivaldi, Monteverdi나 Scarlatti, Grandi, Cavalli등의 곡이 그곳에서 초연되었다고 씌어져 있어서 보는 이들을 또한번 놀라게 한다. 그시절의 베네치아는 이처럼 조그만 성당에서도 이런 미술가와 음악가들을 고용하고 있었단 말인가…
이 전성시대에 베네치아 음악을 수록한 음반도 몇개 더 있는데, Paul McCreesh가 만들었던 [Venetian Vespers]음반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레코드의 표지에 나와있는 광장이 바로 산 마르코 광장이며, 그앞의 성당이 바로 마르코 성당인데, 이 광장은 너무나 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기 때문에 거의 모든 미술관마다 이 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인데, 나는 특히 Turner가 그린 일련의 연작시리즈를 좋아한다. 그외에도 이 도시는 실로 천년동안 서양의 예술가들을 매혹시켰기 때문에 이 도시를 사랑한 사람의 명단은 사실상 거의 모든 서양 예술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이 도시와 가장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리하르트 바그너 역시 이 도시에서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
PS.
산 마르코 성당과 광장, 혹은 베네치아의 모습이 표지에 등장하는 레코드 표지는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비발디의 음반만 해도 내가 본것만 20여장 이상 되는 것 같다. 서로 다른 베네치아의 모습 중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모습을 골라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일 것이다.
98. 4. 15. 니페
음악 평론가로 활동하시는 이준형님의 허락하에 홈페이지에 기재하게되었습니다.
이렇게 훌룡한 글을 기꺼이 선사해주신 이준형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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