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6)

1.  복싱처럼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은 해본 적이 없어서,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요즘 깨닫고 있다.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운동은 여름에도 2시간은 가뿐한데, 복싱은 링에 올라가서 3라운드 뛰고 나면 손이 떨려서 주먹이 안 나간다. 더위가 무섭다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감한다. 나름 더위에 강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힘든 운동해보니 내가 얼마나 편히 살았는지 알겠다.


 


2.  연애란 싸우기도 하고 미워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에로스 적인 사랑이라면 싸우기도 해보고 미워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도 없는 자비로 이루어진 사랑은 인류를 사랑하는 박애에 가깝지 않나 싶다.


 


3.  개를 키우면서 이런 저런 생각도 많고 고생도 많지만, 개 때문에 우는 경우도 생긴다. 내가 우리 두리를 데리고 산지 7년이 되어가는데, 어릴적 모습은 기억이 없고 늙어가는 지금의 모습만 내 기억속에 남은 것 같아서, 잠시 울컥털을 깎아주었는데 털이 없으니 더욱 늙어보인다.


 


4.  요즘처럼 기독교가 사람들의 중심에서 회자되는 경우도 드문 것 같은데, 그 내용이 유쾌하지 못한 것이어서 섭섭하다. 하지만 언제고 터질 것이 터진 경우라고 생각한다. 입으로만 예수를 외치고 살아왔으니 좋은 일을 해도 욕을 먹는다. 아프칸에 간 사람들은 적어도 순수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곳에 지금 봉사하는 단체들이 철수하면 그곳의 아이들과 환자들은 누가 돌봐줄까. 남겨진 자도 떠나는 자도 슬픈 현실이다.


 


5.  기독교의 선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는데, 선교의 정확한 뜻을 알고 기독교를 비판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예수 믿으세요의 선교는 구약에 나온 선교이고, 오늘 의 선교는 희생을 의미한다. 예수를 믿던 안믿던,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내 도움을 주는 것이 선교이다.

그 사람이 예수를 믿던 안믿던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고, 배고픈 형제에게 빵을 나눠주고, 아픈 자매에게 약을 건네주는 것이 선교. 어찌되었든 궁극적으로는 예수를 믿게하려는 목적은 똑같지 않느냐 묻는 사람도 있는데, 결과는 사람의 뜻이 아니다. 그건 누구도 모르는 하늘의 뜻에 가깝지 않나 싶다. 선교는 결과를 바라고 성취하는 행위가 아니라, 지금 내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내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새 언약을 들고 오신 예수님의 뜻이다
.

바리새인들의 행위가 선교가 아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위가 선교다. 오늘 날의 기독교에서의 선교는 단순한 종교적 포교행위를 넘어선다. 기독교에 있어서 선교는 어제의 단순한 포교행위가 아니라, 내 양심이 낮은 곳에서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

아프칸에 간 사람들이 단순히 예수 믿으세요 전도하러 간 사람들이라고 매도하면 할 말이 없다. 잡혀간 사람중에는 팔이 잘린 아이를 우리나라에 데려와 치료해준 사람도 있고, 그곳에서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도 있다. 선교하러갔다고 그 행위를 단순히 종교적 포교행위로 한정짓고 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몰이해와 기독교의 부패가 나은 복합적 산물이다
.

선교는 양심에 귀를 귀울리는 모든 행위를 뜻한다. 왜 아프칸에 갔느냐고 묻지 말아줬으면 한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곳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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