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소설 <공터에서>로 돌아온 김훈 작가 직격 인터뷰

소설<흑산> 이후 , 6년만의 신작 소설 <공터에서>를 펴낸 김훈 작가의 기자간담회 현장을 둘러보다.

김훈 작가의 새 장편소설 ‘공터에서’ 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마씨 집안의 가족사를 조명했다. ‘공터에서’ 에서 아버지 마동수와 둘째 아들 마차세는 김훈 작가의 부친과 작가의 시대가 겹친다.

김훈 작가의 가정사와 세월호 참사를 거쳐 최근 국정농단 사태까지… 기자들의 질문에 개의치 않고도 원고 없이 약 1시간 동안 쏟아내는 김훈 작가의 ‘말’ 은 그대로 풀어 적어도 한 편의 ‘글’ 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기자 간담회 직격 인터뷰를 통해 김훈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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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공터에서’ 라는 제목이 갖는 의미와, 책 표지의 ‘말’ 은 어떤 의미인지?

A.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늙은 말 같았다. 갈퀴가 눈앞을 덮고 광야를 헤매다가 터덜터덜 돌아오는 비루먹은 불쌍한 말. 아버지의 모습을 투사한 것이다. 공터란 주택과 주택 사이의 버려진 땅. 아무런 역사적 구조물이나 시대가 안착될 만한 건물이 들어서 있지 않은 곳이다. 아버지가 살아온 시대를 공터로 보았다. 앞으로 무언가 지어야할 땅인셈, 돌이켜 보면 지난 70년 동안 가건물 위에서 살아왔다 싶고, 그런 비애감과 연결되는 제목이 ‘공터에서’ 이다.”

Q. 신작 <공터에서>의 시대적 배경이 갖는 의미는?

A. “<공터에서>의 시대적 배경은 1920년대부터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때 까지다. 신문을 보며 지난 70년간 우리 사회의 유구한 전통은 갑질 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한국전쟁 때도 피난민들은 줄지어 부산까지 걸어가는데 우리나라 고관대작들이 군용차와 관용차를 징발해 응접세트와 피아노를 싣고 피난민 사이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질주해갔다. 그런 갑질이 지금까지도 악의 유산으로 계속되고 있다. 태어난 조국이 ‘이런 나라였구나. 이런 나라의 후예였구나, 이런 나라에서 글 쓰고 있구나’ 싶어 슬펐다.”

Q. 최근 국정농단 사태를 어떻게 보나.

A. “어려운 질문이다. 조카들은 광화문 집회에 나가 아이들과 깔깔거리며 찍은 사진을 내게 보내오고, 내 또래 친구들은 태극기 집회에 나간다. 양쪽에서 모두 가자고 하는데 감기 걸렸다는 핑계 대고 안 나갔다. 나랑 같이 자란 친구들은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 시대에 사춘기를 보냈다. 국민학교 들어갔을 때 130달러 정도였다. 우리나라는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최빈국 수준이었고, 필리핀의 원조를 받았다.

내 친구들은 종합무역상사 해외주재원으로 베를린이나 파리에 가서 우리 여학생 생머리를 잘라 만든 가발, 비닐 원단, 미역, 김 등을 팔아 한 줌의 달러라도 국내에 송금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기아의 정서가 있다. 기아의 두려움이다. 제일 무서운 게 기아와 적화다. 그런 잠재된 근원 정서 때문에 아마 저렇게 됐구나 생각한다. 태극기 집회에 나타나는 성조기, 십자가, 태극기, 이것들은 내가 어렸을 때 이 나라의 반공 패턴과 완전히 똑 같은 것이다.

실은 참가자라기보다 관찰자로서 광화문 집회에 혼자 가 이쪽저쪽을 다 봤다. 내가 어렸을 때 반공이라는 것은 항상 기독교 우파와 결탁했다.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걸 보며 70년이 지났는데, 내가 참 어디 와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승만이나 박정희 대통령이 외국갈 때 강제 동원돼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도심지 학교 애들은 지금 사람들이 시위하는 장소에 나가 대통령이 오기를 한나절 기다려야 했다. 아이들이 오줌 마려우면 남학생들은 가로수 뒤에서 일을 보지만 여학생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겨울에 언 도시락 까먹고 대통령 지나면 만세 불렀다. 바로 광화문 시위 자리에서. 바로 그 자리에서 저렇게 태극기 들고 데모한다. 내가 너무 오래 산 거 아닌가. 내가 서 있는 자리 어딘가 싶다.”

Q. 지난해 5월 한 강연에서 세월호에 관한 신작을 고민중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됐나.

A. “세월호 얘기는 그 사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자료는 많이 읽었다. 아주 많이. 학문 자료 보다는 기자들이 현장에서 쓴 글을 좋아한다. 다큐나 르포, 보고서, 실록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좋아한다.

세월호도 그렇다. 그런데 세월호는 소설로 쓰자면 이야기를 변형시킬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다음날 자살한 교감을 떠올렸다. 인솔 책임자였는데 탈출해서 다음날 아침에 나무에 목매달고 죽었던 분이다. 이것에 대해 뭐라고 써야 하나. 그 교감선생님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은 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어쩌면 종교의 영역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Q. 평소 소설보다 에세이가 편하다고 했다. 여전히 그런가?

A. “에세이와 소설 중에서는 역시 에세이가 편하다. 주인공 없이 무책임한 정서를 자유롭게 전달할 수 있어서 그렇다. 소설은 반드시 등장인물을 통해 말해야 하는데 특히 3인칭을 만든다는 게 무척 어렵다. 내 소설에 3인칭을 쓰지만 아직 3인칭에 도달하지 못한 1인칭의 아류들일 것이다. 존경하는 황석영 선배 같은 분은 3인칭을 정말 잘 만드는데 나는 3인칭 만들기가 어렵다.”

Q.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나. 인상적인 후배 소설가가 있나.

A. “내게는 젊은 소설가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안목이 없다. 내가 필요한 것만 골라 읽는다. 젊은 작가들은 우리 세대가 못 보는 것들을 보고 있더라. 우리 세대가 구사할 수 없는 언어도 구사하는데 그건 놀라운 발전이다. 우리 노인들은 장님처럼 못 보고 지나는 게 많다. 다만 걱정은 대개 사소한 것들에 치우치는 느낌이다. 사소한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지엽말단이나 사소한 것에서도 큰 의미 찾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들의 새로운 시선은 매우 경이롭게 바라본다.

젊은이들이 문체에 관한 고민이 없는 점도 걱정스럽다. 문체에 관한 한 나는 매우 신중하다. 어떤 글을 쓰려고 할 때 그 목적에 맞는 장인적 기법을 찾는 일은 내게 무척 중요하다. 그게 없는 한 나는 그 목표를 향해 갈 수 없다. 그렇게 기법을 중시할 때 ‘조사’는 아주 중요하다.

한국어 논리 작업에 있어서 조사가 없으면 안 된다. 한국어로 하는 사유는 조사를 연결한다는 것이다. 우리 조사는 ‘은, 는, 이, 가’ 등 대여섯 가지다. 그걸 뗐다 붙였다 하면서 가난한 언어의 삶을 사는 거다. 조사는 모호한데 그 모호함 속에 모국어의 힘이 있는 것이다. ‘비가 내린다’와 ‘비는 내린다’는 다른 느낌이지만 그 차이를 문법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다르다. 그런 걸 문장마다 하나하나 따지려면 진이 빠진다. 하지만 그런 노력 없이는 문체를 만들 수 없다.

나는 법전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우리 순수한 한국어는 조사나 종결형 어미밖에 안 나온다. 지시어나 개념어, 주어·동사·술어는 모두 한자로 돼 있다. 그걸 한글로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100년 지나도 법전의 한글화는 불가능할 거다. 가령 ‘땅’만 해도 대지, 택지, 공한지 등 여러 종류인데 그걸 그냥 땅이라고 했다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정범, 종범, 미필적 고의, 이런 말도 한글로 표현할 수 없다.

한자는 우리나라 글자다. 수 천 년 쓴 글자다. 우리 글자라고 해도 손상 없는 것이다. ‘달아 노피곰 도다샤’, 이것만이 한글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소설에 한자 도입을 주저하지 않는다. 한자가 필요하면 반드시 넣는다. 그게 우리 모국어를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Q. 당신에게 현대사가 특별한 이유는?

A. “내 아버지 세대와 내 세대가 살아온 일들을 다섯 권 분량으로 쓰려고 했다. 한데 기력이 미치지 못했고 싹 다 버렸다. 결과는 초라했다. 내가 쓴 것보다 못 쓴 게 더 많다. 내 평생 짐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세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저런 아버지가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누구나 자기 아버지들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나는 저런 삶을 살면 안 되겠구나. 그게 이 작품을 쓴 동기다.”

Q. 답답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희망은 있을까?

A. ”이번 소설에서 말할 수 있는 희망이란 것은 아주 사소한 것. 갓난애가 태어나는 거 특히 여자아이가 태어나는 것이다. 여성의 생명이 태어난 것은 놀랍고 신비스러운 것이다. 여성은 또 아이를 낳을 수 있으니까. 써놓고 보니 그런 것들이 희망이라고 한 게 한심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고 그게 아니면 또 뭐가 희망인가? 이념이 희망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참 자신이 없는 부분이었다. 희망이라는 것도 결국 생활 위에다가 건설할 수밖에 없다. 갑질을 쳐부수는 것들. 이런 게 희망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그동안 글 쓰는 게 저조했다. 몸이 많이 안 좋았다. 지금은 좋아졌다. 특별한 건 없는데 노화현상인 것 같다. 글을 쓰기가 싫었다. 단편을 가끔 쓰거나 에세이를 쓰며 살았다. 올해부터 정신 차려서 쓰려고 한다. (닭띠 해인 올해)에는 닭이 알을 낳듯이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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