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한겨레…

한겨레에 대한 실망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애정이 많다는 뜻. 조중동 따위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노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 한겨레에서 쓴 칼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어차피 위리안치 신세니 욕되지 않게 자신의 목을 베라 일갈했던 옛 장수의 기개가 필요하다는 칼럼이었다.

조중동은 보지 않고 한겨레만 보았다던 대통령, 당선되고 한겨레가 고마워서 한겨레에 달려가 고마움을 표했던 대통령. 그런 대통령에게 어찌 그런 매정한 글을 썼냐 비판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언론이 이정도의 비판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몹시 화가 났지만 속으로 삭혀야 하는 화, 그런 것이었다.

문재인에 대한 기사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정도도 말 할 수 없다면 그것이 언론인가. 내 마음에 들고 안들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자가 자신의 자유와 신념으로 써낸 기사는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니까.

그런데 이런 내 생각에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 일으킨 사건은 안철수의 급부상을 보도한 한겨레의 4월 9일 기사이다.

문재인-안철수 나란히 37.7%…보수층, ‘안’으로 대이동

기사만 보면 보수층이 안철수로 겹질되어 대세가 안철수로 넘어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사 하단을 잘 살펴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기사 하단에 유·무선 전화면접(유선 54%, 무선 46%) 방식으로 실시된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포인트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nesdc.go.kr 참조).

유선54%의 여론조사라… 무려 54%의 유선 여론조사. 이것의 의미를 한겨레가 몰랐다고 말한다면 한겨레는 신문을 발행할 자격이 없는 것이고 알고 그랬다면 그것은 의도적인 문재인 흠집잡기이며 안철수 편들기이다. 통계 수치를 조작한 여론조사를 이용, 한겨레의 바람을 보도한 것. 한겨레의 반대쪽에 서있다는 조중동이 늘상 써먹던 그런 비열한 짓이지. 여론조사라는 통계를 조작해 여론을 조작하는 짓. 여론조사라는 통계 과학을 이용해 사심을 표출하고 사실을 감추는 짓.

다른 신문도 아니고 한겨레가 선거 한달전에 이런 짓거리를 벌일 줄은 몰랐다. 다른 신문도 아니고 한겨레가…

보지 않는 잡지를 구독해서 포장도 안뜯고 쌓아두어도 구독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한겨레니까. 보지 않는데 나가는 돈이 아까워 구독을 거절하려 해도 일선에서 구독자를 늘이기 위해 애쓰는 분들과 통화하면 거절 할 수 없어 다시 구독하고 그랬다. 그래도 한겨레니까. 이게 내 마음이었다.

뭐 잘난 것도 없지만 나처럼 잘난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해 그래도 노력하는 신문사가 아닌가. 그런데 요즘은 이 생각에 회의감이 많이 든다. 요절한 작가 김소진 그도 한겨레 기자였다. 요즘 기자 였던 김소진이 있었던 한겨레가 그립다. 과거는 다시 돌아올 수 없어서 아름다운 것. 그렇게 말하기에 오늘의 한겨레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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