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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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 가고 싶어서 휴가를 속초로 갔다. 대기 번호 130번 식당을 시작으로 사람이 바글바글. 별로 좋은 기억이 없다. 다만 설악이 남한의 금강이라더니, 이름대로 풍경이 수려함. 여름에 휴가를 가지 않는 사람인데 결혼하니 양쪽 스케줄을 맞춰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한여름의 휴가. 더운데 돌아다녀 고생. 편도 5시간 운전에 고생. 좋은 기억이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없다. 다만 설악산에서의 이틀은 참 좋은 기억. 산에 오르다보니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의 반응이 새롭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그 풍경이 위안이 된다. 설악산 사진은 찍지 않았다. 사진 따위가 담을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휴가는 그냥 설악산 앞에 숙소 잡고 휴가내 설악산만 들락날락하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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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많은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나는, 아무리 맛집이라도 줄을 서지 않는다. 그래서 안간다. 쉬러 가서 사람에 치이고 차에 치이고. 차가 밀려서 도로에서 시간낭비, 주차공간 찾으러 시간낭비. 이런 휴가라면 그냥 집이 더 낫다고 생각. 설악산의 기억이 없었다면 인생 최악의 휴가로 기억 될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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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특성상, 노인들이 주 고객층. 그중에서도 할머니들. 그래서 종종 듣는 말, 이쁘게 생겼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자가 하얀 피부를 갖고 있으면 할머니 눈에는 그렇게 보이나 봄. 그러나 사람이 노화를 피할 수 없는 법. 20대 때는 피부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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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 방향성은 분명한데 누구는 그렇게 늙고 싶어서 늙은 것이 아니라는 명제 앞에서 두려워진다. 누구나 곱게 늙어가고 싶지만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다. 죽음에 대해서 늘 고민하고 생각해보지만, 죽음은 관념과 추상의 영역이기에 답이 없다. 노화는 현상. 그래서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다. 매일 매일의 시간 단위에서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이 슬픈 현상에 대한 무감각. 이 무감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무지의 축복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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