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코리언 (자료 보관용)

이름 : 양 경종
생년월일 : 1920년 3월 3일
본적 : 신의주
관동군 입대 : 1938년
노몬한 전투 참전때 소련군 포로

1943년 여름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독일군 포로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유타해변에서 미군 포로
1945년 5월 영국 포로수용소에서 석방
1947년 미국으로 이주
1992년 4월 7일 미국 일리노이주 노스웨스턴대학 부근 거주하다 사망

평범하게 태어나 수많은 전쟁참화를 겪은 뒤 미국으로 이주
40년 넘는 세월을 평범한 미국시민으로 생활
슬하에 2남 1녀 자녀 둠.
결코 가족들에게는 자신의 전쟁경험을 이야기 한적 없다고 전해짐.

-> 하지만 이 내용은 신빙성이 없다. 그의 신원은 아무도 모른다.

출처는 2차대전 자료 데이터 베이스( http://www.worldwar2database.com ) 여기서 1944년 → The Normandy Landing → The Normandy Invasion → Image Gallery → 22번 사진 순으로 찾아 들어 가면 위 사진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사람은 일본군으로 징집됐다. 1939년 만주국경 분쟁시 소련군에 붙잡혀 Red Army에 편입됐다. 그는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Atlantic Wall을 건설하는데 강제 투입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됐다. 붙잡혔을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 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미국 뉴올리언스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다 정년퇴직한 스티븐 엠브로스 아이젠하워센터 명예관장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 전후의 미군의 활약을 담은 군사 역사서를 여러 권 썼다. 그는 브루어라는 2차대전 참전 군인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미 공수부대 소속 브루어는 6월 7일 노르망디 해변 후면도시에 낙하해 해안벙커를 방어하고 있는 독일군을 공격 했다. 이때 브루어팀은 독일 말조차 못하는 4명의 동양인을 포로로 잡았다.

한국 출신이라는 그들은 1941년 소비에트 적군(赤軍)으로 모스크바 근교에서 싸우다가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고 그 후 독일군의 노르망디 해안선 방어병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적군이 된 이유도 설명했다. 1938년 한국에서 일본군에 징집되어 39년 만주의 소련 국경에서 전투 중 포로가 되어 적군이 되었다는 것이었다는 것. 브루어는 그러나 “4명의 한국인을 어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한반도로 돌아갔겠죠. 그리고 1950년에 그곳에 전쟁이 발생했을 때 미국을 위해 싸웠거나 미국에 반대해 싸웠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20세기 ‘역사의 변덕’이 아닐까요.” 라고 말했다.

SBS 방송 내용

한 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한 장의 사진. 독일 군복을 입고 노르망디에서 발견된 체념한 눈빛의 동양인 사진을 놓고 온갖 추측만이 난무했다. 이 사진의 출처를 거슬러 가보니 미국의 한 2차 대전 웹사이트. 역사학자 스티븐 앰브로스의 ‘D-Day’ 중 일부를 발췌, 한국인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그의 책 ‘D-Day’에 따르면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미 101공수여단의 로버트 브루어 중위가 유타해변에서 4명의 동양인을 체포했다고 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 통역을 통해 알게 된 자초지종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1938년 일본군에 징집, 1939년 소만국경전쟁 즉 노몬한 전투에서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고, 다시 소련군에 편입되어 1941년 12월 독소전쟁에 참가해 모스크바전투에서 독일군에 체포된다. 이후 독일군이 되어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소설 같은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취재팀은 일본, 몽골, 러시아, 독일, 프랑스, 미국으로 그의 흔적을 찾아 2만KM의 대장정에 나선다. 이 대장정은 20세기 전쟁의 광기 속에 휘말린 나라 잃은 민초가 겪었을 디아스포라, 유랑의 길을 60년 만에 더듬는 역사적인 탐험이었다.

반세기가 지나 드러나는 노르망디 코리안의 족적

그의 행적을 뒤쫓으면서 강대국의 역사 속에서 치열한 생을 살아온 코리안들을 만나게 된다. 노몬한에서 소련군에 붙잡혔으나 일본진영에 돌아가기를 거부한 천호직, 노몬한 포로 출신으로 소련군 장교가 된 박성훈,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한국인 장교 최본트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광기 속에서 각기 다른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한국인들. 취재팀은 러시아 군사문서보관소에서 노몬한 전투에서 포로가 된 한국인의 명단과 독소전쟁에 참가한 125명의 고려인들의 명단, 독일 프라이부르크 군사문서보관소에서는 히틀러의 전사가 된 중앙아시아민족들로 구성된 100만 명이 넘는 동방대대에 관한 기록,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는 미국으로 끌려간 40만에 가까운 독일군 포로, 그중에서 러시아출신의 독일군 포로에 대한 강제송환에 얽힌 강대국 간의 비밀협정, 미국 포로수용소에 억류되어 있던 500명의 일본군 소속의 한국인 포로 등 미국 위주의 2차 대전사에서 잊혀진 역사적 사실들을 발굴해냈다

(제1부) 독일군복을 입은 조선인

노르망디의 코리안이 일제의 서슬 아래 머나만 소· 만 국경 지대인 노몬한에서 전투에 참가, 소련군의 포로가 되고, 소련군으로서 피비린내 나는 독소전쟁에 참가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다.

(제2부) 국적 없는 포로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동방대대로 차출되어 독일군복을 입고 노르망디에서 미군의 포로가 되는 과정, 그 후 미국의 포로수용소로 넘겨져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지를 추적한다. 그를 생포한 로버트 브루어 중위의 추측처럼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6?25전쟁에도 참전하게 되었을까?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