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수, 그리고 아티스트 안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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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환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가수이며 또한 9장의 정규 음반과 3장의 기획음반, 1장의 라이브 음반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이다. 지난 12월 4일 자신의 4번째 앨범을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가운데 79위에 올려놓은 안치환을 만나 그의 음악과 그가 바라본 세상에 대해 들어보았다. 전날 늦게까지 생일파티를 하고도 2시간 반이 넘는 긴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뜨거웠다. 그 순정한 격정속으로 함께 들어가보자.



서정민갑(이하 서정) :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안치환(이하 안) : (웃음) 그냥 공연하고, 가정 일도 하면서, 노래도 만들고, 술도 먹고, 운동도 하고 지낸다.


 


서정 : 지금도 축구는 계속하고 있는가?


안 : 축구팀이 통틀어 세 개인데 시간되는 곳에 다 나간다. 한 팀은 부회장이고 두 팀은 총무, 잡일을 하는 총무가 아니라 회비를 완벽하게 거둬내는 총무다. (웃음) 내 포지션이 주로 레프트 윙과 공격수 쪽인데 취향에 가장 맞는 거 같다. 7, 8년 됐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너무 거칠다고 나를 막 피하기도 했다. (웃음)


 


서정 : 연세대학교 울림터에서 시작해 새벽, 노찾사 활동으로 이어졌다.


안 : 대학 노래패에서는 사실 도토리 키재기다. 다만 누가 더 감각적으로 음악을 이해하느냐가 중요했던 거 같다. 그때 사실 2년 반 정도 지나니까 저항가요들이 좀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그만하고 싶다 얘길 했더니 새벽에 데리고 갔다. 각 대학에서 나름대로 능력 있다는 친구들이 다 모여 있고 노래책에서 봤던 선배들이 있었다. 거기서 자의 반, 타의 반 활동을 시작했던 거다. 좀더 전문적이었고 창작을 했기 때문에 음악적인 욕심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서정 : 노찾사 활동도 정리했다.


안 : 1987년 6월항쟁 이후 대중적인 활동을 할 팀이 필요했다. 안치환이 하면 어울리겠다고 사람들이 생각했고 나 역시 변화를 갖고 싶어서 노찾사 활동을 했다. 그런데 그때 운동권은 내부적인 규율로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강했다. 나의 음악적인 성향이 중요한 게 아니라 팀이 요구하는 음악적인 성향이 중요해서 팀에 맞는 목소리를 요구했다. 당시 노래 운동의 음악 폭도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고 천편일률적인 부분도 있었다. 나는 어떤 게 옳은 것인지 몰랐고 다만 좋다고 느끼는 것, 하고 싶었던 것에 대해 고집이 있었다. 팀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감 없이 했지만 어느 순간 활동을 아주 즐겁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서정 : 솔로로 나온 건 처음이었는데 어려움은 없었는가?


안 : 굉장히 힘들었다. 당시 팀에서 나오는 사람은 죄인이었다. (웃음) 그때 나는 프로를 지향하고 대중에게 돈을 받고 노래를 하는 팀이 어떻게 아마추어리즘을 고집하느냐. 지금은 설사 아마추어라도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서 프로화 해야 하고, 전문적인 연행집단으로 거듭나야 된다고 항상 얘기했다. 직업을 따로 갖고 노래를 하는 건 단지 취미에 불과하다, 하나에 매진하자고 이야기하는 나와는 당연히 갈등이 생기는 거다. 당시 노찾사의 모든 음악적인 뒤치닥거리를 다 했었는데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오게 됐다.


 


서정 : 1, 2집이 노찾사에서만큼 주목받진 못했다.


안 : 당연한 일이다. 대중가요가 어떻게 상품화돼서 대중에게 알려지는지 메커니즘을 전혀 몰랐다. 2집까지는 내가 생각했던 길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굉장히 고생스러웠던 시기였다.


 


서정 : 3집에서 조동익 씨를 만난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는가?


안 : 그렇다. 3집부터는 대중가요 시스템을 사용하기 시작한 거다.


 


서정 : 3집에 대해 만족했는가?


안 : 편곡에 있어서는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지만 특히 조동익 씨 편곡이 마음에 들었다. 주류판에서 음악하는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서정 : 이번에 뽑은 100대 명반에서 4집이 79위에 랭크가 됐다는 걸 알고 있었는가?


안 : 몰랐다. (웃음)


 


서정 : 4집은 록 어법이 전면화됐는데 록을 차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안 : 포크를 기반으로 엄숙한 시대로부터 뿌리를 둬왔는데 굉장히 답답했다. 처음으로 소리를 터뜨려서 만든 노래는 <자유>가 가장 대표적이다. 그 노래를 만들고 내가 이런 노래도 만들 수 있다는 걸 기쁘게 생각하면서 내 음악을 둘러싸던 껍질을 벗어버리는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당시 1990년대로 넘어 오면서 소련이 붕괴하고 운동권이 붕괴했다. 견고해 보이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버린 때 갑자기 백기 들고 가는 사람들에 대해 굉장히 화가 많이 났다. 하지만 다른 무엇을 해볼 생각은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누가 다져놓은 길이 아니라 내가 다지고 가야될 길밖에 없다는 느낌속에서 자유롭게 음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거 같다. 그래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노래하겠다고 나와 고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말 해야 될 일에 대해 용기를 갖고 시작했던 거다. 그 변화 중 하나가 록 어법이었다. 황량하고 다 사라져버린 시대에서 누군가는 울부짖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4집에 많이 실었던 거다. 억눌렸던 것들이 표출되기 시작했던 거다.


 


서정 : 그전부터 록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인가?


안 : 록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게 아니라 록이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었던 거 같다. 하지만 서태지나 민중가요권의 천지인의 등장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서정 : <수풀을 헤치며>나 <당당하게> 는 다시 희망을 갖고 나가보자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안 : 기존 노래 운동권의 노래들이 대부분 계몽주의적이지 않은가? 벗어나자고 3집부터는 내 문제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내 문제가 나만의 문제일 수는 없기에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정 : 당시 록의 저항성에 대한 담론에 영향을 받기도 한 것인가?


안 : 당연하다. 나는 저항성에 뿌리를 두고 음악을 시작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내 노래가 갖고 있는 저항성을 포기할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내 음악의 전부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격조 있는 대중가요를 해나가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길 바랬고 록 어법은 저항성을 이어가기에 좋은 음악적 그릇이었다.


 


서정 : 방송용 곡을 넣어야 되지 않겠나 해서 <내가 만일>을 넣었다고 들었다.


안 : 음반사 신나라에 마스터 음반을 갖다 줬더니 “다 좋은데 (웃음) 방송에 틀 노래가 없네요“ 그러더라. 그래서 한동준형에게 부탁해 <그 사랑 잊을 수 없겠죠>란 노래를 받았는데 아주 우연한 기회에 결혼식장에 가서 만난 건축가 양진석씨가 ”안치환 씨가 이 노랠 부르면 어떨까“ 하고 들려준게 <내가 만일>이었다. 느낌도 괜찮고 예쁘더라. 두 곡을 다시 녹음해서 수록한거다.


 


서정 : 그 노래가 터졌다.


안 : 사실 별로 못 느꼈다. 대중적으로 뜬다는 것을 누렸으면 사람이 이상해졌을 거 같은데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정 : 록으로 변화하고 <내가 만일>이 히트하면서 변했다는 얘기는 없었는가?


안 : 대중의 기호를 따라가며 하려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변화는 옳다고 느꼈다. 그리고 변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음반을 끝까지 안 들어본 사람들이다.


 


서정 : 밴드 ‘안치환과 자유’를 결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안 : 처음에는 기타 하나 갖고 소극장 공연을 시작했다. 그런데 3집 이후 록 음악을 소화하는데 한계가 있더라. 처음에는 선후배들 모아서 했다가 일정에 다 맞출 수 없어서 밴드를 결성하기 시작했다. 어떤 게 더 좋은지 계속 바꿔 가면서 연습을 많이 했다. 자꾸 반복해가면서 만들어나가고 녹음을 해나가는 것이 가장 우리다운 음악 같다. 계속 같이 갈 거다.


 


서정 : 시를 빌어서 노래를 많이 만든다.


안 : 내가 그 시만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소재들이 대부분 남녀와 관련된 시시콜콜한 일들인데 벗어나고 싶다. 남녀간의 주제라도 다른 차원에서 접해보고 싶을 때 가장 기댈 수 있는 것이 문학이다. 시에 곡을 붙이는 나의 노래가 어느 정도 수준을 담보해주기 바라는 이유도 복합돼 있다.


 


서정 : 구체적으로 선동하는 가사를 거의 안 쓴다.


안 : <철의 노동자> 같은 노래도 있지만 노래의 기본은 대중위에서 이게 옳은 길이라고 이리로 오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대중과 항상 같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더 공감을 얻어낼 수 있고 얘기할 거리가 많은 거 아닌가?


 


서정 : 가사는 거리를 유지하는데 보컬은 앞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안 : 노래하는 스타일일것이다. 염두해 두진 않는데 잠재의식 속에 그런 게 있나 보다 (웃음)


 


서정 : 언제 곡을 많이 쓰는가?


안 : 오전이다. 아침밥을 먹고 내 방에서 혼자 뭘 하다가 어느 순간 ‘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곡을 쓴다. 시작하면 90%는 완성된다. 노래를 안 만들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도대체 내가 뭐 하는 사람인가? 어디 가서 노래 몇 곡 하고 콘서트하면서 돈이나 버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창작자로서의 갈증이 자극되면서 곡을 몇 곡씩 쓰게 된다.


 


서정 : 노래를 만들 때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안 : 가사가 먼저 있을 때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내 몸에 들어와 있는가? 그때 곡이 써지는 거라서 가사를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 첫 번째다. 굉장히 반복을 많이 하는데 무엇보다 노래가 괜찮아야 한다. 자꾸 어거지로 해결하려는 건 결국 노래가 안된다.


 


서정 : 창작의 원동력이 계속 솟아날거라고 생각하는가?


안 : 초조해 하거나 늙어서도 곡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해본 적은 없다. 뭘 써야 될지 잘 모를 때가 있으면 그냥 안 쓴다. 내 생활 열심히 하다 보면 또 써진다.


 


서정 : 음악 스타일이 별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안 : 무엇으로 새로워져야 되는가 되묻고 싶다. 갑자기 랩을 할까? 트로트를 할까? 재즈를 할까? 물론 재미로 할 수 있지만 왜 그러한 변화를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내 음악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욕심이 있다면 음악에 현을 더 많이 써서 고급스럽게 만들 필요도 있겠지만 밴드 안에서 가장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운드를 갖고 있다.


 


서정 : 인기의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안 : 미안한 얘긴데 충분히 인기가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TV나 매스컴에서 활동해보지 않았기도 하고 떴다고 했을 때도 떴다는 것을 누리지 않았다. 매스컴에 얼굴 내미는 활동도 아니기 때문에 인기라는 말에 대해서 조금 거부감이 있다.


 


서정 : 어느 무대에 세워놔도 아우르는 장점이 있다.


안 : 몇 년 전 내 앞 순서가 동방신기였다. (웃음) 동방신기 잘 몰랐는데 중고등학교 여자애들이 있다가 쫙 빠져서 무대가 썰렁한 거다. 얼마전에도 앞 순서가 원더걸스인데 군인들이 있다가 (웃음) 쫙 빠져버렸다. 이제는 즐겁게 얘기할 수 있는 여유는 있는 거 같다. 그래도 무대는 내가 선택하는 부분이지 가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서정 : 콘서트를 자주 하는데 늘 매진된다. 잘 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안 : 내 음악을 같이 이해하고 들어주고 늙어가는 팬이 어느 정도 있는 거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보고 실망하면 안 온다는 거다. 관객이란 냉혹한 사람들이다. 대중이 나한테 냉혹하듯 나도 대중에 대해서 굉장히 냉혹하다. 대중 때문에 내가 활동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내가 잘하기 때문에 여기 오는 거라고, 내가 못하면 여기 오겠느냐고 생각한다. 내 콘서트에는 쇼적인 게 없다. 음악을 첫째로 두지 않고 말과 쇼로 관객과 대화하려고 하는 건 굉장히 비겁한 짓이다. 전 세계적으로 훌륭한 뮤지션들이 무대에서 쇼하는가? 말은 “고맙습니다” 밖에 없다. “감사합니다.” 노래에 대한 설명 잠깐, 그리고 열심히 자기 음악 하는 거다. 이것이 정통 콘서트의 모습이고 나는 정통 콘서트를 지향하고 지켜나가고 싶다.


 


서정 : 굉장히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가끔 지겹지 않은가?


안 : 지겨울 때 많다. 5, 6년 전인가? 너무너무 지겨운 거다. 그래서 한 달 넘게 가족들과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다. 아시다시피 (웃음) 음주, 격렬한 운동 정도가 평상시 나를 지탱해주는 거 같다.


 


서정 : 노래 부르면서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


안 : 가끔 노래 부르면서 ‘진짜 이 노래 멋있다, 노래 부르는 이 상황, 이 음향, 조명, 연주도 너무 멋있다’고 느낄때가 있다. 짜릿한 느낌이랄까? 관객과 부딪치는 느낌이 행복하다면 행복한 거다.


 


서정 : 결정적으로 성장했다고 느낀 건 언제인가?


안 : 힘들었던 1988년과 1990년 이후 편안했던 거 같다. 음반으로 따지면 3, 4집 때. 그 다음 8집 음반 만들 때 음악적으로 나를 많이 다그치고 그만큼 성과가 있었다. 8집에서는 내 음악의 뿌리와 세상에 대해서 하고 싶었던 외침을 가감없이 표현해 보자고 굉장히 공들여 작업했다. 음악적인 평가와 상관없이 개인적인 성과였던 거 같다.


 


서정 :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뮤지션이 있다면 누구인가?


안 : 대학 시절에는 이름 없는 또는 이름 있는 윗 세대 포크 음악 했던 모든 사람들. 그 이후에는 시인으로 따지면 고 김남주 선생님 같은 분이고 지금은 음악적으로만 따지면 내가 듣고 있는 세상의 모든 뮤지션인 거 같다. 내용적으로는 그냥 내가 살고 있는 세상 같기도 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뮤지션의 길을 그래도 가장 고고하게 간 사람은 조동진인 거 같다. 나머지는 과거의 영광에 목매여 누추한 음악적인 연명을 하는 사람들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존경할 선배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선배들은 있지만 대부분 너무 누추하다. 나이 들어서 다 잃은 것처럼 TV 나와서 기웃거리고 과거 히트곡 몇 개 갖고 누추하게 살고 있는 모습들이 후배로서 굉장히 보기 안 좋다.


 


서정 : 만약 본인이 그런 평가를 받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안 : 나이가 들어서도 활발하게 성과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인데 그렇다면 음악을 안 할 거 같다. 4집에도 그렇게 썼다. 내 아이가 그렇게 생각하면 음악 안 한다. 못할 거다. 


 


서정 : 끝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가치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안 : 아티스트적인 면모이다.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뮤지션이라고, 아티스트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티스트란 건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값어치가 있건 없건 잘났건 못났건 영혼을 파는 직업이지 않는가. 사실 영혼을 팔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거고 그래서 먹고 사는 직업이다. 그 사실에 솔직하고 진실한 삶을 사는 아티스트면 될 거 같다.


 


서정 : 아티스트의 기준에 얼마만큼 왔다고 생각하는가?


안 : 반은 오지 않았나 싶다. 내 음악을 평가한다면 70점 정도 주면 되지 않겠나. 그래야 스스로 위안도 갖지. (웃음)


 


서정 : 스스로 민중가수라고 생각하는가, 대중가수라고 생각하는가?


안 : 대중이 다양하기 때문에 둘 다라고 생각한다. 사실 민중가수라는 말에 경외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민중가수라고 얘기 해줄 때는 나의 부족함에 대해서 스스로 안타까워하면서 고마워하기도 하지만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노력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지금 하고 있는 음악이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음악이라 명칭에 대해서는 초연하려고 한다. 그리고 민주화 과정에서 싸웠던 노래들이 다 민중가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항가요일 수 있지만 민중가요는 민중이 즐겨 부르는 노래다. 저항가요가 민중가요다운가? 트로트가 민중가요다운가? 계급적으로 민중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 많이 불려진 노래들은 민중가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엉뚱한 질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정 : 그럼 본인의 노래도 민중가요가 아닐 수 있다.


안 : 그래서 민중가수라는 말을 부담스러워한다. 민중들을 위해서 만들고 부른 노래는 있지만 내 노래가 그만한 민중성과 대중성을 획득했는가?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참 힘든 부분이다. 계급성과 대중성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노래를 알릴 수 있는 메커니즘도 갖고 있지 못하다.


 


서정 : 최근 민중가요 진영이 참 어려운 거 같다.


안 : 잘하지 않으면 더 어려울 것이다. 노래가 알아서 퍼지고 불려지던 시대가 지났다. 매너리즘을 현명하게 극복하고 싸워나가지 못하면 자연 도태될 수밖에 없다.


 


서정 : 민중가요들도 틀 안에서 반복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안 : 누구나 다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서정 :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여전히 믿는가?


안 : 적어도 내가 그런 노래를 쓸 수 있다면 나는 아직 굳건한 것이고 나의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내 길은 계속 갈 수 있다. 아직도 할 얘기가 많은 세상이다.


 


서정 : 새롭게 문제되고 있는 양극화나 비정규직에 대한 곡도 쓰고 있는가?


안 : 노동자에 대한 미발표곡이 몇 있다. 하나는 서기상씨가 부르고 있는 <나는 노동자다>. 또 하나는 <내 친구 그의 이름은>이라는 노래, ‘128일 동안 고공 투쟁하다가 스스로 세상을 버린 내 친구 김주익 그의 이름 이 땅의 서러운 노동자’라는 노래가 있다. <내 이름은 비정규직>이라는 트로트 스타일로 만든 노래도 있다.


 


서정 : 앞으로 특별히 하고 싶은 음악이 있나?


안 : 능력이 안돼서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국악스럽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노래다운 노래를 하고 싶다.


 


서정 : 젊은 세대들에게 들려지기 위해서 변해야 된다는 고민을 하지는 않는가?


안 : 한다. 심각하게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 생각할 때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다인가?’ 라는 의문이 있고, ‘너무 세대별로 분화돼버려 음악으로 해결을 하려고 해도 차단돼버리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생각도 한다. 하지만 뮤지션의 노력이 첫번째이기 때문에 더 고민중이다.


 


서정 : 음원을 많이 사용하는 시대가 됐는데 따로 준비를 하진 않는가?


안 : 10이라는 의미 때문에 10집까지는 음반을 내고 싶다. 그 다음 싱글을 낸다면 더 편할 거 같다.


 


서정 : 얼마 전 조선일보와 인터뷰는 왜 했는가?


안 : 음반 많이 알리고 싶어서 했는데 미안하게 생각한다.


 


서정 : 동년배인 386 세대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 : 일부 정치인들 빼고는 좋게 생각한다. 현실을 열심히 사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 내가 신뢰하는 건 정말 싸웠던 대중이지 영광을 가져간 사람이 아니다.


 


서정 :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안 : 다들 너무 급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급하게 생각했지만 자기 생애안에서 끝내려고만 생각하지 말자. 빨리 원하는 대로 변하면 좋겠지만 그런 세상이 아니다. 옳은 방향으로 변해왔던 것만 해도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


 


서정 :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안 : 철학의 부재 아닐까? 먹고 사는 문제,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최고의 가치가 되면 안되는데 최고의 가치가 돼버렸다. 점점 천박해지는 정서나 정신에 대해서 얘기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서정 : 생활 신조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안 : 생활인 나와 음악인 나로서 끝까지 균형을 이루며 살고 싶다.


 


 


안치환은 <솔아 푸르른 솔아>나 <내가 만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뿐이다. 그의 앨범을 제대로 들어보았거나 라이브콘서트에 한번이라도 가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패기 넘치는 현재진행형인지를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저항하는 민중가수이며 또한 예전의 히트곡을 반복하는 편한 길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노래를 쏟아내는 한 사람의 아티스트이다. 너무나 빨리 늙어가는 뮤지션들 사이에서 드문 현역으로 40대에 들어선 그가 한국의 브루스 스프링스턴이나 믹 재거, 혹은 스팅처럼 한결같은 현역이기를 바란다. 언제나 스스로에게 성실하고 단호하게 음악하고 있는 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뜨거운 팬들의 박수, 그뿐이다.


 



 인터뷰 원문 : http://music.naver.com/today.nhn?startdate=200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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