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에 홀로서는게 쉽지 않은데…

18세가 되면 애육원에서 독립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법. 예외가 없다. 법이 그러한 까닭은 그런 필요와 당위성때문이겠지만, 이유를 떠나 열 여덟이라는 나이에 삶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은 가혹하다. 18세가 되면 정착금이 100~500만원 사이에 지급이 되는데 이 돈을 갖고 세상에 나가는 것이 말처럼 쉬울까.

애육원에서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요즘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보다 부모가 있는데 시설로 보내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한다. 시설이 예전과 달리 많이 좋아졌고 가족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은 것.

아무리 시절이 좋고 먹고 자는 것이 나아졌어도, 부모와 함께 사는 것과 비교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법과 제도로도 보완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시설에서 자립한 후 많은 아이들이 정서적인 문제로 방황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다.

늘 예산이 없어서 일을 못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이명박은 사대강, 자원외교 , 방위산업 등으로 엄청난 돈을 해먹었다. 그래도 나라는 돌아갔다. 나라가 이들에게 무관심 한 것은 부모도 빽도 없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우병우 같은 사람이라면 이 아이들이 애초 이런 대접을 받을 이유도 없겠지만, 설사 그렇다 치더라고 대우는 많이 달라졌겠지.

사회의 가장 약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이런 법과 제도를 만들어냈다. 과거는 그러했어도 지금은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약자에 대한 사회의 태도 일텐데 우리의 현실은 늘, 아직도. 대학교 신입생의 설렘과 기대가 충만한 아이들이 많겠지만, 그 나이에 살 집을 걱정해야 되고, 어떻게 생계를 꾸려야 하는지 걱정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 나이에 짊어지기 참 많은 삶의 짐이지만, 그보다 더 무거워 보이는 외로움과 혼자라는 그 가늠할 수도 없는 감정은 어떻게 해야할까. 보다듬을 수 없는 무게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아이들이 자립 할 수 있는 환경과 지원에 무관심한 현실은, 성공한 역사 성공한 대한민국이 부정하는 현실이다.

살처분, 이 비인간성의 향연

살충제 파문이후 산란계들이 어떻게 될지 뻔히 보여서 티비를 안보는데, 어제 그만 봐버렸다. 많은 닭들이 굶고 있다. 그 좁고 더러운 닭장에서 사는 것도 모자라 굶고 있지. 귀한 사료값앞에서 닭은 그냥 돈쳐먹는 애물단지. 아마 사료값과 병아리값 저울질 하다 닭들은 다 예정된 결말을 맞이하겠지.

이럴 때일수록 달걀을 더 먹어야한다. 미안한 마음에 달걀을 사다가 쟁여놓는다. 살충제가 들어갔을 지언정, 과일보다 안전할텐데… 굳이 저 닭들을 이렇게까지…

돈이 하느님인 이 사회의 단면이다. 모든 것의 척도와 기준은 돈. 지하철 한구간을 타도 1250원 왕복이면 2500원. 이 나라는 2500원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택배를 보낼 수 있는 마법을 부린다. 그 마법이 가능하기 위해 택배산업이 어떤 꼴을 취하고 있는가. 인간이 물건이 되는 기적을 보여주는 나라다.

사람이 이런 대접을 받으니 동물이나 가축은 말 할 필요도 없다. 그중에서 산란계, 달걀을 낳는 닭은 사육이 아니라 폭력이다. 그 더럽고 좁은 케이지로도 부족해 밤에도 환하게 불을 켜는 농가가 상당하다. 내가 직접 접한 것은 아니지만 산란계로서 가치 상실 된 후, 그 닭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들었을 때 내가 들은 이 말이 사람이 한 짓이 맞는지 믿겨지지가 않았다.

우리는 얼마나 더 죽고 죽어야 생명을 가치에 눈을  뜰 수 있을까. 수십조 재산을 쌓아두고도 이건희는 편히 죽지 못한다. 역설적으로 돈이 너무 많아서 그는 죽지 못한다. 그 수십조 재산도 그를 살려낼 수 없다. 그것이 생명의 가치. 그 가치가 물건으로 대접받는데 사람이라고 온전할까. 우리가 이러고 사는건 다 이유가 있다.

 

 

 

 

새만금이라는 환상

30년전 농지가 부족하니 쌀 생산을 위해 시작한 새만금. 정책은 수시로 변해 농지로 시작해서 지금은 대규모 산업단지와 서해안 시대를 여는 국제도시를 꿈꾸고 있다. 그 꿈은 이루어 질까?

새만금 근처에 사는 지역민들은 어마어마한 모래와 먼지에 시달리고 있다. 저 사진 풍경은 사막이 아니라 우리나라 새만금의 풍경이다. 갯벌을 메워 땅을 만들었는데 그 땅을 쓸 데가 없다. 어떻게든 쓸 데는 만들려면 중앙에서 예산을 타와야지. 그래야 지역 건설업자들도 먹고 살고, 예산 가져왔다고 공무원들은 어깨에 힘들어가고, 여기 언론은 장충기에게 문자를 못 보내니 저 둘에게 문자를 보내야겠지?

온갖 미사어구를 붙여 새만금의 미래, 서해안 중심도시 포장을 하면 지역언론은 열심히 나팔을 불어준다. 그게 30년 내내 반복된 이 지역의 고질적인 행태. 지금도 바뀐 것은 없다.

새만금이 서울 근처였더라면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서울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것도 모잘라, 접근성 자체도 떨어진 이 땅을 어떤 식으로 활용해서 개발하겠다는 것인지…

중앙정부가 바보가 아니다. 새만금의 미래가 그렇게 장미빛이였다면 진작 예산을 투입해서 뭔가를 이루려 했겠지. 처음부터 끝까지 조단위로도 부족할 돈이 들어갈 일이 줄줄이 서 있는데, 미래는 누가봐도 암울하다. 부정하는 것은 지역 언론과 정치계. 이들 공생관계의 아름다움은 옆에서 보면 눈물이 난다. 참으로 아름다운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