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44

*

설악산에 가고 싶어서 휴가를 속초로 갔다. 대기 번호 130번 식당을 시작으로 사람이 바글바글. 별로 좋은 기억이 없다. 다만 설악이 남한의 금강이라더니, 이름대로 풍경이 수려함. 여름에 휴가를 가지 않는 사람인데 결혼하니 양쪽 스케줄을 맞춰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한여름의 휴가. 더운데 돌아다녀 고생. 편도 5시간 운전에 고생. 좋은 기억이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없다. 다만 설악산에서의 이틀은 참 좋은 기억. 산에 오르다보니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의 반응이 새롭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그 풍경이 위안이 된다. 설악산 사진은 찍지 않았다. 사진 따위가 담을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휴가는 그냥 설악산 앞에 숙소 잡고 휴가내 설악산만 들락날락하면 될 듯.

*

사람 많은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나는, 아무리 맛집이라도 줄을 서지 않는다. 그래서 안간다. 쉬러 가서 사람에 치이고 차에 치이고. 차가 밀려서 도로에서 시간낭비, 주차공간 찾으러 시간낭비. 이런 휴가라면 그냥 집이 더 낫다고 생각. 설악산의 기억이 없었다면 인생 최악의 휴가로 기억 될 뻔…

*

회사의 특성상, 노인들이 주 고객층. 그중에서도 할머니들. 그래서 종종 듣는 말, 이쁘게 생겼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자가 하얀 피부를 갖고 있으면 할머니 눈에는 그렇게 보이나 봄. 그러나 사람이 노화를 피할 수 없는 법. 20대 때는 피부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는데…

*

노인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 방향성은 분명한데 누구는 그렇게 늙고 싶어서 늙은 것이 아니라는 명제 앞에서 두려워진다. 누구나 곱게 늙어가고 싶지만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다. 죽음에 대해서 늘 고민하고 생각해보지만, 죽음은 관념과 추상의 영역이기에 답이 없다. 노화는 현상. 그래서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다. 매일 매일의 시간 단위에서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이 슬픈 현상에 대한 무감각. 이 무감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무지의 축복인지 모른다.

 

 

 

징역 6년형에 분노한 전 의협회장…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에게 징역 6년을 구형한 기사에 분노한 전 의협회장. 망나니의 춤을 보는 것 같다며, 이성이 사라진 미개한 대한민국을 한탄.

자기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쌓아 관련 단체의 장까지 오른 사람의 인식.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국가권력이 개인을 감시 억압하는 문제를 동네 양아치들이 깽판치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국가권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이루 다 셀 수 없는 이유를 동원해 국가권력의 위험성을 설명 할 수 있다. 올바른 가치판단과 과정을 통해 결론된 국가의 공권력도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 때로는 그 피해가 개개인의 삶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때문에 국가권력은 늘 고민해야 되고, 신중해야 한다. 이것은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권력의 존립의 근원이 되는 절대명제이다. 이것 없는 국가권력은 폭력이고, 권력의 행사자는 양아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내 이 양아치들은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폭력을 일상화 했다. 양아치들이기때문에 보고 배운 것이 양아치 짓거리. 그래서 그간 국가권력이 동네 깡패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비틀거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사회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데, 자기의 전문지식을 쌓아두고 그것에 취해 살면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사회적으로 누리는 자기의 지위와 신분이 그것을 가려줄 뿐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

한 시기에 성장이 멈춰버리면 아무리 전문지식을 쌓아도 가치판단 또한 정체한다. 박정희 때 논리를 지금에도 들고 써먹고,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착각하는 것. 박정희는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희대의 변종 독재를 창조했는데, 그것을 아직도 들고 민주주의를 외친다.

노무현은 국가권력 최종 결정자로서 자기의 위치와 신분에 대한 고민을 그 자리에서 내려오고 나서도 끊임 없이 반복했다. 그런 그를 두고 양아치들은 동네북처럼 두드리고 조롱했지. 아직도 멀고 먼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말해준다.

 

 

짧은 생각 #43

*

내가 예민한 것이 2가지가 있는데 소음과 냄새다. 막걸리를 좋아하셨던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늘 그 술냄새가 같이 따라온다. 유년 시절의 기억은 컴컴한 작은 방안의 사물과 같다. 또렷하게 떠올리기 힘든데, 기억의 존재는 분명하다. 그 기억속의 냄새는 아직도 생생해 술에 취한 노인을 만날 때면 그 냄새에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런데 그 시절에도 지금도 이 냄새는 좋은 기억은 아니다. 이것은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 여러 이유중 하나. 향수 냄새도 싫어하는데 술 냄새를 좋아할 리 없다.

사람마다 자기의 냄새가 있다. 이걸 체취하고 부른다. 사람마다 자기의 체취가 있고 자기의 얼굴을 책임지는 것만큼 자기의 냄새 또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인들은 그렇다 쳐도 나이도 젊은데 냄새가 고약한 사람을 만나면 참 괴롭다. 말도 못하고…

**

간만에 장마다운 장마를 만났다. 근래들어 장마는 죄다 마른 장마. 가뭄에 큰 해갈이 되었으면 좋겠다.

***

어제는 어깨와 하체 운동을 하고 30분을 걸었다. 무산소 유산소를 병행하니 건강해지는 기분. 숲 옆길로 들어서면 숲내음이 코끝을 자극한다. 향기는 이런 것을 두고 일컬어야 한다. 화장지까지 가향을 하는 이 시대는, 향기가 넘쳐나는데 향기가 사라진 시대.

숲속으로 들어가면 소음과 냄새는 사라진다. 그래서 그 곳에 가는 것이 늘 좋다.

****

자기 전 김훈의 수필을 읽으며 잔다. 그의 글을 읽으면 문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말 장난이 넘쳐나는 시대에 그의 글은 진지하다. 꼰대 같은데 자유롭고 옛스런 문장인데 참신하다. 한문을 적극적으로 흡수해 그 문체를 이 시대에 맞게 풀어내는 그의 방식을 좋아한다. 아버지를 회고하는 글을 읽고 김훈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이해가 안되는 구석이 많은 인물중 한명이지만, 그가 살아온 삶을 읽으니 그냥 심정적 동조가 된 것. 그의 아버지도 그도 결코 평탄한 시대를 살 수 없었다. 그것이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