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빼려고 마음 먹었다.

푸시업바를 구입하면서 좀 어려운 운동에 도전중, 그래서 동영상으로 운동하는 모습을 촬영하며 자세를 잡아가고 있는데 내가 내 모습을 보니 이건 살이 쪄도 이렇게 살이 찔 수 있나 싶다. 체중계에 사십 평생 최고의 무게가 찍혀도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동영상으로 보는 내 모습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좌절감을 안겨준다.

일단 건강한 형제 푸시업바 동작중에 가능한 것이 몇 개 되지 않는다. L-시트까지는 할만한데, 여기를 넘어서는 동작은 일단 아예 불능. 살을 빼고 운동을 좀 더 해야겠다.

아내가 입으로만 살을 뺀다고 빈정대던데, 이번에는 살을 빼겠음. 확실하게…

 

 

열정은 실망은 동전의 양면

20대 중반의 나. 노무현을 참 좋아했고 개혁국민정당 활동도 나름 열심히 했다. 그중에는 시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던 꽃집 아저씨도 있었고, 나중에 국회의원도 한 사람도 있었다. 정치인 노무현도 개혁국민정당도 참 즐거웠고 열정의 순간이었지만, 결국 큰 실망과 후회로 다가왔다.

문재인 녹색당. 사십의 나이에 다시 마주하는 그때의 기억. 이제는 실망해도 후회해도, 나는 안다. 그것은 당연한 사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에 포기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한 끝없이 반복되는 열정과 후회.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멀지 않는 곳에 도돌이 표가 있다.

초등학교 1학년, 그때의 뚜렷한 기억 하나.

그 시절 한 달에 한번 정도 우리집을 찾아오던 거지가 한명 있었다. 엄마는 늘 마다않고 식사를 차려 대접했다. 거실 문간에 앉아 밥을 먹던 그 거지의 모습. 어린 그 시절의 나에게도,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도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돈을 줘서 보내지 왜 그렇게까지 하냐 엄마를 타박했지만, 엄마는 늘 밥을 푸고 찬을 꾸려 식사를 대접했다. 우리가 먹는 똑같은 그릇과 수저 젓가락으로. 식사를 마치면 그 거지는 엄마가 손에 쥐어주는 얼마 안되었을 돈을 받고 떠났다.

어른이 되고 엄마가 없는 지금, 이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엄마가 다른 사람에게 베푼 호의가 아름답고 그 아름다운 마음의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마음에 비가 내린다. 오늘은 이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왜 인지 감당할 수 없을만큼의 눈물이 쏟아졌다. 봄이 온 것이다. 찬란한 봄.

그 시절 거지도 염치를 알았다. 기꺼이 문간에 앉아 식사를 했고 문고리가 닳도록 찾아오지도 않았다. 나눠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서로 염치를 알고 사람의 인정을 알았던 시절. 우리 엄마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 따뜻한 마음을 받는 거지도 염치를 알았다.

그때의 그 광경이 내 기억속에 뚜렷한 것도, 세상을 알고 나이를 먹어갈 수록 사람이 서로를 배려하며 사는 것이 점점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따스한 사랑을 온전히 받고 자란, 축복받은 사람이었다는 것.

엄마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