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반문 정서에 대한 생각

핑크감자님 글을 읽고…

호남 사람들의 문재인 비토 감정에 대해서 생각 할 때마다 뭐라 딱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온다. 난 반감의 뿌리가 김대중 대통령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민주화 시기 혼자서 이 지역 민주화를 이끌어온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이 지역 사람들의 지지와 열망은 굳이 설명 할 필요가 없다. 그 시대 그를 향한 그런 지지는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바가 있었고, 나름의 정통성도 갖고 있었다.

호남 지역은 김대중 대통령이 지역의 맹주로 들어선 이후 한 번의 예외 없고 한 정당이 지역 정가를 독식했고, 그것이 수십년의 세월을 두고 진행되며 이루 말 할수 없는 지역 사회의 퇴행을 가져왔다. 김대중 대통령이 제왕적 총재로 당을 지배하던 그 시기가 가져온 부작용.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면서부터 이 퇴행이 지역을 넘어 중앙정치무대로 넘어오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노무현이다. 자당의 대선후보이면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공격당했던 그. 도무지 정당한 이유와 논리를 찾을 수 없었던 공격의 근원에 전라도 지역에 수십년을 기생한 지역 토착 정치세력이 있다.

이들은 지역 토호,유지들과 결탁하며 자신들의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했고, 그 카르텔에 도전하는 자는 가차없는 응징으로 대응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이 시대정신과 그 어느 대의명분에도 우선했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온갖 작태와 퇴행을 불러일으켰다.

서울공화국이 된 한국에서 지방은 서울과 수도권을 위한 흡혈의 대상이다. 지방은 자기들이 쓰지도 않는 전기 생산을 위해 발전소와 송전탑을 지어야 하고 자기 지역에 살지도 않는 국회의원을 선출해야 한다. 지역에 정당의 공천을 받고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중 그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선거철만 되면 수십년을 딴 곳에 살던 사람이 갑자기 그 지역 토착민 행세를 한다. 서울사람이 지방사람 흉내를 내는 것이다. 역겨운 것은 이들은 쉽게 지역사회를 접수하기 위해서 지역 유지,토호들과 결탁을 한다. 지역사회에 즐비한 간판만 있는 건설회사들이 생존 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카르텔에 도전하면 친노가 되고 친문이 되는 것이다. 이촌향도 저출산 시대가 되면서 지방은 노령층의 인구와 십대 학생들이 가장 큰 인구비율을 형성하는 기형적 인구구조를 가져오게 된다. 2,30대가 사라진 시골의 인구구조는 지역 사회의 퇴행적 정치구조의 고착화를 불러왔고, 이것이 지금 지역정치,사회의 현실이다. 고착화된 퇴행구조에 대항하는 사람은 친노가 되고 친문이 된다. 여기서 친노 친문의 실체에 대해서 언급않겠고, 친노 친문의 공천이 그럼 다 옳으냐라는 대답에는 답하지 않겠다. 100%의 정당성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구조적 현실속에서 노인층의 투표 성향은 지역의 투표 결과를 결정한다. 전북에서 가장 대도시라는 전주 그곳에서도 가장 젊은 지역에 속하는 전주병의 선거 결과를 보면 노인층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전주병 선거에서 정동영은 김성주를 0.77 퍼센트, 일천여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기게 되는데 이 바탕에 노인층의 높은 투표율과 더불어 높은 지지율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소위 국민의당 국회의원중에서 현역시절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람이 누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굳이 찾으면 한두명 있겠지만, 현역시절 지역 정치 퇴행의 주범으로 공격받고 정치개혁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친문패권주의를 들고 전라도 소외론을 꺼낸다. 있지도 않는 사실을 날조해 이슈를 만들었는데 이게 먹힌다. 지역사회의 인구구조는 이것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자정능력을 상실한지 오래다. 그 결과가 전라도 지역의 국민의 당 독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구조적 현실은 외면하고 친문패권주의 운운하는 것은 지역 현실에 대한 몰이해가 나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친문이 전가의 보도처럼 옳다는 것은 아니다. 순도 100% 정의 찾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지역 현실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적폐의 대상이 누구이며, 개혁의 대상이 누구인지 정도는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 고인 물과 같은 정치구조는 퇴행을 넘은 타락을 낳는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경쟁은 그런면에서 앞으로 지역정치구도에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것이다.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와 같은 것. 전라도 정당이라는 정통성 하나만 갖고 그 긴 세월의 적폐를 안고 가는 국민의 당과 이에 맞서는 더민주의 싸움의 승자는 누가될까. 이건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얼치기 믿음

“‘하나님이 하라고 했어요’라는 말의 불편함에 대하여”

이 글을 읽다보니 예전 선교단 시절 친구가 생각난다. 어쩌다 기도의 응답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와 다르게 그 친구는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확신을 갖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나는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갖게 되냐고 물었다. 그 친구의 확신에 찬 대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기도후 마음이 평안하면 그것이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기도라는 자기최면을 기도의 응답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싶다.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이런 대답을 듣고 깊은 감화를 받았다면 교회를 갈 것이 아니라 병원을 먼저 갈 것을 권한다.

그런데 이런 사이비 믿음이 좋은 믿음으로 전염병처럼 횡행하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건 믿음이 아니라 착각이다. 착각을 믿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웃자고 던 진말에 죽자고 달라드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자기 착각을 믿음과 확신으로 포장해 하느님의 뜻을 설파하는 얼치기 신앙인들. 이런 사람들에게 총이 주어지면 IS가 되고, 강단이 주어지면 사이비 목사가 된다. 본질적으로 이들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왜냐면 자기 생각과 뜻을 하느님의 생각과 뜻으로 포장해 세상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대형교회 목사들이 설파하는 하느님의 원대한 계획 비전, 결국 헌금으로 시작해 교회 건축으로 이어지고 대형 집회를 통해 ‘모두 하느님이 하셨습니다’ 라고 결론내려진다. 결국 하느님을 신자들 주머니나 털어 건축에 열을 올리는 그런 존재로 둔갑시켜 버린 것. 이런 심각한 믿음의 왜곡은 믿음의 상태가 중병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하느님의 나라를 설파하며 만국의 하느님 열방의 하느님을 부르짖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필요한 것은 헌금이 아니라 회개고, 건축이 아니라 삶이다. 하느님의 성전은 저 거대한 교회당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삶이기 때문이다.

마차사고 이후 극적인 회심을 통해 철저한 기독교인으로 들어선 파스칼은 죽는 날까지 기독교인의 삶, 신앙, 철학에 몰두하였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고 신앙고백한 글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아직도 남아있다. 이런 그가 이런 말을 남긴다. “인간은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행할 때일수록 희열에 넘쳐 철저하게 악을 행한다”

 

짧은 생각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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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한번 보건소에서 출장나와 혈압 혈당 같은 검사해주는데 오늘 검사를 한 번 받아봤다. 몇살이냐고 묻는데 마흔살요… 순간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었구나… 낯설다. 마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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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날달까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음반을 미친 듯이 챙여뒀는데. 덕분에 이번달부터 가난해지네. 그것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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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이 자꾸 늘어서 40년 최대치에 도달했는데, 살 빼기가 힘들다. 아무리 운동을 해봤자 한 끼 잘 먹으면 끝나는 부질 없는 짓? 운동량이 아무리 많아도 먹는 걸 조절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적게 먹어야 한다. 이것 외에 방법은 없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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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쁘고 지치고 피곤하고… 왜 회사를 다닐까. 회의감이 많이 든다. 늘 밀려오는 감정이지만 요즘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