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21 10:03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민중
순수하고 건강한 민중? 다 지나간 소리고(옛날에도 대개 그 민중 앞에서 우뚝 서고 싶은 ‘진보적’ 인텔리들의 레토릭이었지만).. 오늘 민중은 매우 어리석을 뿐 아니라 매우 탐욕스럽다. 신자유주의에 찌들고 지배체제의 오랜 대중조작의 결과라지만 어찌됐든 오늘 민중은 분명히 그렇다. 민중을 위한다면, 민중이 순수하고 건강해지길 진정으로 바란다면 지금 당장은 그 사실을 아프게 인정해야 한다.
좌파라는 사람하고 나는 뼈속까지 다르다 하고 느낄 때가 있는데, 아직도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좌파라는 형도 나에게 극단적인 좌파 성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내가 접하는 매체들도 죄다 진보 성향의 매체들이다. 조선일보는 안가면서 김규항씨 블로그는 꼬박 꼬박 가서 글을 읽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난 좌파라는 사람하고 결정인 부분에서 틀어지는데, 그중 하나가 나는 뼈속까지 보수로 물든 사람이라는 것이다. 박정희를 구국의 영웅으로 알고 있는 어머니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나에게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역사가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간 종교를 신봉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중 하나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인간 대부분이 수구적 성향이 강해서 보수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좀 꺼림직 한 것 자체가 사실인지라 내가 보수다 라고 대놓고 말하는 형편은 아니다.
얼마전 김규항씨 블로그에서 저 글을 읽었는데, 지식인의 먹물티가 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그랬다. 물론 짧은 본문만 가지고 내가 오해하는 것일수도 있는데, 민중이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것이 어제 오늘 일인가? 게다가 그것이 어찌 민중만의 속성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지. 난 어리석음과 탐욕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한명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것은 본디 타고난 것이 그렇기 때문이다. 세상에 선한 인간은 없다. 선해지려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가진 것 없고, 못 배운 민중에게 지혜로운 청빈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좀 어폐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역설적으로 민중이 위대한 까닭은 어리석고 무능한 그 자체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리석고 무능해서 옳은 길을 선택할지 모르고 어딘지 몰라 울음보가 터질 것 같은 어린아이처럼 뭐 하나 제대로 해낼 것 같지 않은 것이 민중이다. 그래서 약자고 소외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예수가 이 땅에 온 까닭은 잘 배우고 가진 많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다. 예수가 섬기로 온 사람은 어리석고 탐욕스러워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은 그 민중이었다.
민중을 계몽하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민중은 더디지만 스스로 깨우치고 전진하는 역사의 능동적 주체이며 역사 그 자체이다. 그래서 역사는 진보의 커다란 발자취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퇴보가 역사가 뒷걸음질 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역사의 주인인 민중은 결국 역사를 제 갈 길로 돌려놓는다.
난 김규항이 먹물의 우월의식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중동 쓰레기나 읽고 글 나부랑이를 기고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김규항은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동화될 수 는 없지만 내가 진보에 대해서 끝없이 관심을 갖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는 까닭이다.
좌파라는 사람중에는 많이 배웠지만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제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소위 좌파라면 내가 엘리트 의식에 젖어들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점검할 필요는 있다. 진정 좌파가 되려면 못하고 탐욕스러운 민중을 섬겨야 한다. 섬기려면 어리석고 못남까지 덮을 줄 알아야 한다. 민중이 못나고 탐욕스러운 것은 민중의 탓이 아니라, 지식인이라는 당신들의 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중을 탓하기 이전에 치열한 자기 반성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결국 민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많이 배운 먹물들이 아닌가. 자기반성이 먼저다. 오늘 이 사회의 거대한 어둠은 민중이 쌓아올린 것이지만, 그 민중을 거기로 내몬 것은 지식인 바로 당신들이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못나고 어리석으면서 탐욕스러운 씨알을 가슴을 치며 개탄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 민중을 자기가 왜 섬겨야 되는지를 알고 있었다. 많이 배우고 깨우쳤지만 그는 그가 돌아갈 곳이 민중이며, 그 자신이 민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때문이다.
가난하고 무지한 민중이다. 가난한 까닭으로 세력이 없고, 세력이 없어 학문도 못하였고 출세도 못하였고, 마음이 못생긴 까닭으로 일본 국민 노릇도 못하였고, 변할 줄도 전향할 줄도 몰랐고, 외국으로 도망할 용기도 없고, 시세를 맞추는 재주도 없어서, 큰 뜻이 있는 것도아니지만 한국을 못 놓았고, 타고난 그대로, 맡겨진 그대로 당하는 그대로 한국 버릇을 못 놓고 한국 땅을 못 떠나고 한국 냄새를 못 버리고 한국 마음을 못 잊고, 한국의 고난과 욕을 못 피하고, 죽어도 한국의 흙으로 죽는 수밖에 없다 하고 있었던 그 씨알이다. 만일 그들이 아니었다면 그들을 통해 ‘한국’이란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해방이 가 붙을 곳이 없지 않았는가? – 함석헌
2008/04/09 01:06
선거?
방문자수가 늘어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선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고민할 게 뭐 그리 있겠는가? 단순하게, 진보신당 후보가 있다면 찍고, 없다면 민노당 후보를 찍고, 둘다 없다면 공란으로 두고, 정당투표는 진보신당으로..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 혹은 애인 혹은 자전거와 재미있게 노시길. ^^
진보신당과 민노당이 아니면 기권을 하라. 정 찍을 인물이 없어서 투표장에서 행해지는 기권은 마지막 유권자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다. 진보만 옳다는 생각은 결국 한나라당과 다를 바가 없다. 한나라당이라는 이 미친작자들의 모임과 말이다.
2008/04/16 03:29
노회찬과 홍정욱
‘가짜 진보’ 노무현 정권의 가장 큰 죄악은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서 ‘가치에의 추구’를 앗아가 버렸다는 것일 게다. 이명박 씨는 5년 전만 같아도 대통령 후보로서 파멸하기 충분한 도덕적 결함들을 가졌다. 그러나 그 결함들은 노무현 정권 5년을 통해 더 이상 결함이 아니게 되었다. 2007년의 한국인들은 이명박을 도덕적으로 용서한 게 아니라 이명박의 도덕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총선에서 진보신당 같은 곳의 후보가 당선되는 건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이를테면 노회찬과 홍정욱을 생각해보자. 노원구의 누구도 노회찬이 홍정욱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도 노회찬이 홍정욱보다 경제적으로 더 유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노회찬의 승리는 애당초 어려웠던 셈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서민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정책들’을 마련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정책들이 서민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먼저 현재의 프레임을 깨트려야 한다. 프레임을 깨트리지 않는 한 어떤 ‘서민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정책들’도 소용이 없다. 서민대중들이 아예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현재의 프레임에 매몰된 가장 바보스러운 사례는 지난 대선에서 권영길 씨가 내건 ‘서민의 지갑을 채워드립니다’였다.) 프레임을 깨트리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오늘 한국인들이 경제적 유능함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걸 개탄할 게 아니라 현실로 인정하되 그놈의 경제적 유능함이 계급으로 전혀 다르게 갈린다는 사실을 되새겨주는 것이다. 부자들에겐 홍정욱이 노회찬보다 경제적으로 유능한 게 사실이지만, 서민대중들에겐 노회찬이 홍정욱보다 훨씬 더 유능하다는 사실(주장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을 깨우쳐주는 것이다. 문제는 역시 계급의식의 빈곤이다.
요즘 진보의 위기는 다른 곳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노무현 탓으로 결론내고 공식화되는 이런 사고 자체가 진보의 위기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물론 노무현의 실정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노무현 탓하기는 쉽지만, 진보의 이름값 하기는 어렵다.
노회찬이 뉴타운때문에 홍정욱에게 졌다고 생각했다면 그도 노무현 탓만 하는 다른 여타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회찬은 자신이 떨어진 것을 무지하고 탐욕스러운 민중에게서 찾지 않았다. 그는 그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탓하였다.
계급의식도 없고, 쥐뿔도 깨이지 못한 민중을 탓하지 마라. 그 민중이 있어서 네가 있는 것이다.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치열하게 파고들지 않으면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진다. 결과에 대한 단편적인 분석은 누구나 쉽다. 원인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노희찬에게 희망이 싹터 오르는 것은 그는 누구 탓도 하지 않았고, 누구에게서 이유를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진정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이었다. 원망은 쉽지만 반성은 어렵다. 노회찬에게서 희망을 읽었다라고 호들갑을 떨어도 괜찮다. 노회찬이기 때문이다.
아우 정말.. T_T 저도 같은 이유로 김규항씨 정말 별로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도 그 사람의 대중관을 놓고 제가 실망했다고 쓴 글을 늦달님이 트랙백 해 가셨던 것 같기도 하구요.. 진짜. 민중들 속에서 답을 찾을 생각은 않고 민중들 탓을 하는 사람이 어찌 진보를 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지 -_-.. 김규항씨가 만일 진보가 대중들로부터 외면받는다고 느낀다면, 그건 자기같은 사람들 탓일 수도 있단 걸 생각해줬음 하는 아주 작지만 별로 실현될 것 같지 않은 소망이 있네요;;;; -_-;;;;
별리님 말씀처럼 진보라는 사람들이 조금만 더 겸손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대중보다 잘난 것 같고, 깨인 사람이어서 대중을 이끌어가야 할 사람인 것 같지만 그 역시도 대중의 한 일원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